첫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는 육아책도 정말 많이 읽고,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었습니다. 서른 즈음의 초보 엄마는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또 책에서 읽은 내용과 내 아이는 너무 달라서 오히려 육아서적 읽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던 적도 많았습니다. 육아 서적들을 읽으면서 이 저자가 정말 아이를 길러보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내 애는 대체 어느 카테고리에 속하는 거야? 하면서 활활 타오르는 분노에 휩싸였던 적도 많습니다. (특히 <베이비 위스퍼> 읽을 때 우리 아이에게는 진짜 하나도 적용이 안되어서 절망했었어요. 수면 교육에 늘 실패했었습니다. 육아 열등감이 심했던 시기였고요. 남편이 핀란드 교육법 책을 사오면, 왜 핀란드 엄마가 뭘 잘했대? 내가 뭘 못했는데? 이러면서 화부터 났던 때였습니다. )
아이가 내 뜻과 달리 어긋나고, 잘못했을 때 화가 나다 못해 절망스러웠던 날도 참 많았습니다. 나의 싫은 모습을 닮았던 것, 심지어 내 부모님의 싫은 부분을 닮았던 것은 진짜 화가 났었고, 너는 왜 하필 이런 유전자를 골랐니 싶어서 온 세상이 다 미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자의대로 골라서 닮은 게 아닌데도요. 지금 돌아보며 생각하니 아득한 옛 일처럼 느껴집니다. 세 살 터울로 둘째를 낳으면서 인생의 저 아래를 걷는 듯이 어려웠었습니다. 마치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탕을 걷고 있는데, 하나는 업고, 다른 하나는 걷게 하면서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 이 와중에 남편은 열심히 직장 다녔습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남들은 딸 둘이라서 좋겠다고 하고, 아들보다 딸이 낫다고 하는 분도 있었지만, 저는 제가 먹이고 길러야 할, 사람으로 자라게 해야 할 두 존재를 낳았다는 것이 너무 무겁고 어려운 책임으로 느껴졌습니다. 제 몸 하나도 관리 못하는 나라는 존재에게 절대적으로 매달려서 살아야 하는 두 어린아이의 무게가 버거웠습니다.
- 행복했던 순간,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기쁨
그러나 돌아보면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둘째를 눕혀 놓고, 첫째 아이와 같이 간식을 먹던 시간, 둘째를 수유하느라 앞으로 안고, 첫째는 엄마 등에 매달려서 이야기 하던 날들, 둘째를 유모차에 태워 밀면서 첫째와 같이 노래 부르며 놀이터에 가던 날들. 애들 아빠가 일찍 들어오면 두 아이를 맡기고 밥 하던 기억. 그때도 행복했나 싶은데, 지금 돌아보니 행복했던 게 맞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날들, 어린 딸들과 한 몸으로 살았던 시절에, 힘들지만 좋았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자식을 낳고 기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쩔쩔매며 키우다 보니 어느덧 아이들도 자라고, 제 인격도 자랐습니다.
- 세 살 터울의 장점과 단점
첫 아이를 낳고 기를 때 제 이기적인 본성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이런 거라면 다시는 임신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남편도 육아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기에, 동의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차 둘 다 마음이 바뀌었고, 둘째 아이를 갖게 되어 세 살 차이 나는 둘째 딸을 낳았습니다.
네 살인 딸과 한 살인 갓난아기. 혹자가 아이들이 몇 살 터울이 좋으냐고 누가 물으면 저는 두 살이라고 하겠습니다. 같은 보육 시설, 같은 유치원, 같은 학교로 다닐 수가 있는 나이 차이니까요. 큰 애가 일곱 살 일 때 둘째가 다섯 살로 같은 유치원을 보내면 마음이 한결 안심이 되지요. 물론 저희는 세 살 차이라서 큰 아이 유치원 졸업하면서 둘째 아이가 그 유치원으로 들어갔고, 몇 년 후에는 큰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 작은 애도 중학교를 졸업할 거라서 상황이 번잡스럽습니다. 졸업식 날짜가 다르길 바라봅니다. 부모가 한 명씩 가지 않고, 넷이서 다 같이 기쁜 순간을 사진 한 컷에 담고 싶습니다.
세 살 터울이 나서 연년생이나 두 살 터울 보다 좋은 점은, 그래도 큰 아이가 조금 더 엄마 사랑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첫아이로 태어나 미숙한 초보 부모의 사랑이지만, 많이 쏟아주고 온 세상인 듯이 바라봐주었습니다. 큰 아이라고 해서 맏 딸 (어후, 이거 너무 고리타분한 단어네요!) 취급하지 않고, 그냥 한 아이로, 한 사람으로 기르려고 애씁니다. 네가 잘해야 동생도 따라 하지, 이런 말은 삼십 년 전에나 하던 말이지요. 둘째 아이를 길러야 할 사람은 부모인 거고, 겨우 세 살 많은 첫째 아이에게 과한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저희 부부가 그렇게 조심하는데도, 큰 아이는 신기하게도 첫째 딸로, K 장녀로 자라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는 무섭습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도,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입니다.
- 자매가 좋은 점
투닥거리면서 자라고 있는 세 살 터울의 자매를 기르는 저희 집에 가장 좋은 롤모델은 저와 제 여동생일 겁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영상통화를 하는 엄마와 이모를 보면서 아이들이 자매란 저렇게 좋은 친구라는 걸 알아가길 바랍니다. 세상 어떤 친구보다 더 가슴 아프게 사랑할 수 있는 게 자매이고, 언제든 의지하며 살 수 있는 게 자매이고, 그런 선물을 본인들은 이미 받고 누리고 있다는 걸 저희 딸들이 언젠가는 깨닫기를 바랍니다.
각자 결혼하고, 곡절을 겪어가며 인생의 쓴 맛을 견뎌가며 자매가 얼마나 귀한 지 배워갑니다. (그렇다고 저나 제 동생의 결혼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남편 만나서 잘 살고 있는데도 삶은 쉽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오늘을 삽니다. 제 40대는 30대보다 더 나아졌습니다. 50대는 이보다 더 좋겠지요? 오늘 누릴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겠습니다. 육아의 기쁨과 슬픔 속에서, 평범한 하루 속에서 작은 행복과 작은 슬픔을 누리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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